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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약사(略史)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한 일본은 조선의 중앙은행제도 개편에도 착수하였다.

합병 이후에도 기존 대한제국의 법률 효력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조선총독의 명령(「조선에서의 법령의 효력에 관한 건」, 조선총독부제령 제1호, 1910.8.29.)에 따라 (구)한국은행도 일정 기간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후 1911년 3월 일본이 자국 법률로서「조선은행법」을 제정하여 공포하면서 (구)한국은행은 조선은행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조선은행법」은 은행 명칭을 변경하고, 은행권 발행한도를 일부 증액하며, 감독주체를 한국 정부에서 일본 정부나 조선총독부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한국은행조례」와 실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이에 따라 영위 업무의 범위도 (구)한국은행과 동일하게 중앙은행 업무와 상업은행 업무를 겸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구)한국은행의 설립일을 조선은행의 설립일로, (구)한국은행이 행한 행위는 조선은행이 행한 행위로, (구)한국은행권과 제일은행권은 조선은행이 발행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는 등 여타 사항에 대해서도 (구)한국은행을 그대로 계승하도록 법률로써 규정하였다.

조선은행주권
조선은행 주권

이처럼 일본이 합병 이후에도 조선에 자국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지점을 설치하는 대신 별도의 중앙은행을 존립시켰던 것은, 이러한 방식이 일본의 대륙진출 구상에 더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일본은 민간 상업은행이 거의 부재한 조선의 경제여건에서 자국의 대륙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주체로서 중앙은행기능과 상업은행기능을 겸하는 특수한 형태의 은행이 계속 필요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조선에서 일본은행권이 아닌 조선은행권을 별도 발행⋅유통함으로써 조선의 경제상황 급변에 따라 일본은행의 발권기반이 영향받을 가능성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조선은행권
조선은행권

1911년 8월 15일 정식 출범한 조선은행은 독점적 발권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경제적⋅군사적 영토확장을 적극 지원하였다.

구체적으로, 설립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재정조달 지원에 집중하였다면,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만주, 일본, 중국 등지에서 활발히 영업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일본 산업자본의 대륙진출을 후방지원하였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는 일본국채 인수 및 군수산업 대출 확대 등을 통해 일본국의 전비(戰費) 조달에 혁혁한 기여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동 은행의 영업점(지점, 출장소, 파출소, 사무소)은 해외로 크게 확장되어 갔는데, 설립 초기인 1911년 조선 13개, 해외 2개 등 총 15개에 불과했던 것이 1945년 일본 패망 직전에는 조선 17개, 해외 49개 등 총 66개로 4배 이상 늘어났다.

시기별 조선은행 영업점 수

광복 직후 미군정이 기존 일본 법규의 효력을 당분간 존속(미군정법령 제21호)하도록 함에 따라 조선은행은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영위해 나갔다. 다만 조직과 인력면에서는 미군정에 의해 일본인 간부가 전원 해임되고 한국인으로 교체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이후 조선은행은 1950년 6월 이후 청산절차에 들어가 1982년 4월 3일 동 절차의 최종 종결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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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지배인회의(19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