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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야기

우리나라의 중앙은행, 한국은행 창립기

개요

1. 주요 연표


2. 역사적 배경

19세기의 국제통화제도는 대내외적인 통화 불균형이 국제수지 조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금본위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단순한 발권은행으로서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더불어 금본위제가 붕괴되고 관리통화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통화신용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중앙은행이 통화가치를 안정시킴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도 역사적 경험을 통해 널리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통화가치의 안정,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 등을 중앙은행의 기본목적으로 정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사기업적 형태로 유지되던 중앙은행을 국가기구화했다. 아울러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하여 통화신용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게 되었다.

한편, 1909년 11월 대한제국은 (구)한국은행조례를 제정하여 당시까지 일본 제일은행이 맡아오던 발권 및 국고업무를 관장하는 중앙은행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한일강제병합 후 경제침략의 거점 확보를 위해 금융제도를 개편하면서 1911년 8월 (구)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편하였다. 동 조선은행은 발권, 국고업무 등 중앙은행의 일부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 수탈과 일본 산업자본의 대륙침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태평양전쟁 중에는 은행권을 남발함으로써 일본의 전비조달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직후 조선은행은 기존 법률 등의 효력을 존속하도록 하는 미군정법령 제21호에 의거하여 발권, 국고, 대외지급준비자산의 보유, 시중은행에 대한 재할인 등 중앙은행 고유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우리나라 중앙은행으로서의 체제와 기능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였고, 상업은행 업무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편 당시 일본인의 철수로 일본인이 운영하던 산업시설의 가동이 여의치 않은 데다 남북 분단으로 남북간 상호보완체제가 붕괴됨으로써 생산활동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의 피난민 및 해외로부터의 귀환동포 유입과 전시 통제경제체제의 해체 등에 따른 소비 수요 급증으로 악성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 이후 미군정 및 과도정부의 재정활동은 조세징수에 의한 재원 조달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통화증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금융 면에서도 제도의 후진성과 적절한 통화신용정책수단의 결여로 금융기관의 무절제한 여신 취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통화 및 신용 공급의 억제를 통한 인플레이션 수습이 절실해졌으며, 이로써 통화신용에 대하여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중앙은행의 조속한 설립이 요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