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은행, 중앙은행 설립 방안 발표(1947.5.)
해방 이후 새로운 중앙은행의 설립에 관한 논의는 당시 제한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던 조선은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7년 4월 조선은행은 ‘중앙은행설립대강’이라는 중앙은행 설립방안을 발표하며 중앙은행 설립에 관한 구상을 발표하였다.
동 자료는 현재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1947년 5월 조선은행이 「조사월보」 창간호에 게재한 ‘신조선중앙은행일시론’이라는 논총이 동 자료의 내용을 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은행이 조사월보 논총을 통해 제시한 중앙은행의 모습은 반 민간소유의 준국영제도로 운영되며 재무부의 일원적 감독을 받는 체제이다.
이사회는 금융계, 산업계의 추천을 거쳐 정부에서 선임하도록 하여 중앙은행의 정책이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방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사회 업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한계를 보인다. 중앙은행의 업무는 발권부와 은행부를 분리하여 운영하도록 하였다.
동 설립안은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을 꾀하고 당시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금환본위제도를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배제한 체 선진중앙은행이었던 영란은행과 미연준의 제도를 단순히 차용하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재무부, 금융법규대강초안 발표(1948.3.)
과도정부에서도 1948년 3월 재무부에 「금융법규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식적으로 중앙은행법 제정작업에 착수하여 ‘금융법규대강초안’을 작성했다. 이어서 1948년말에는 재무부에 재정금융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선은행의 건의안을 검토하는 한편 1949년초에는 독자적인 정부안을 마련하였다. 금융법규대강초안은 현재 입수되지 않고 있지만, 1948년 10월 자유신문에 게재된 기사가 금융법규대강 초안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 기사에 따르면 재무부는 '한국중앙은행'이라는 국영 중앙은행 설립을 구상하였다.
3. 조선은행, 신중앙은행제도안 발표(1948.9.)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재무부가 주도한 「금융법규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조선은행은「특명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중앙은행 설립방안의 연구를 지속하였다.
1948년 9~10월호 「조선은행 조사월보」에 게재된 ‘중앙은행제도의 연구(기2)’에는 외국 중앙은행제도에 관한 사례 조사 및 연구를 토대로 작성한 신중앙은행제도안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특명조사위원회」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토대로 1948년말에는 중앙은행법 초안을 작성하여 정부, 국회, 주한 미국경제협조처 사절단 등에 건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동 제도안에서는 중앙은행의 명칭을 ‘한국은행’으로 정하고 중앙은행이 국가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영국유를 배제하고
정부 및 금융기관에서 자본금을 출자하는 공유국영제를 제안하였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로는 15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통화심의회를 두었는데
재무부 1인, 중앙은행 1인, 타 금융기관 4인, 국회의원 3인, 학계 전문가 3인, 산업계 대표자 3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통화심의회는 정부의 화폐발행권 남용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한 점에서는 의의가 있으나
그 역할이 주요 업무에 대한 심사, 정부에의 건의, 자문 등에 그쳐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주체로는 설정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지닌다.
4. 재무부, 「한국중앙은행법」초안 보도(1949. 초)
재무부 「재정금융위원회」의 「금융분과위원회」는 중앙은행제도 개편방안을 연구하여 1949년초에 정부안을 마련하였다.
동 자료는 현재 전해지고 있지는 않으나, 1949년 2월 3일자 「연합신문」의 ‘한국중앙은행 설치 – 숙고중인 초안 수성안’ 제하의 기사가
동 중앙은행 설립방안을 보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무부안은 중앙은행으로 '한국중앙은행'을 설립하되, 조선은행 개편안의 핵심인 중앙은행의 독립을 완전히 배제하고
중앙은행의 정부종속을 제도화하고자 하였다.
정부에 대한 무담보 대출 및 국채 인수를 중앙은행의 업무로 포함시켰으며 은행권의 발행한도 결정권한을
재무부장관에게 부여하고, 금리수준 결정시에도 재무부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규정하였다.
새로운 중앙은행에 대한 조선은행과 정부의 구상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조선은행은 중앙은행이 정부에 종속될 경우 재정적 편의 제공에 치중하게 되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인식 하에
서구식 중앙은행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조선은행이 작성한 중앙은행 설립방안 및 조사부의 조사자료는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정부, 금융기관이 출자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중앙은행 소유구조와 정책결정기구인 통화심의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반면 정부는 중앙은행의 정부 종속을 제도화하고자 했다. 당시 정부는 해방 이후 경제재건을 위해 정부 주도의 경제부흥계획 추진을 구상하고 있었으나
전반적인 생산활동이 미약하고 재정기반도 취약하여 재정지출 재원을 조세수입보다는 중앙은행 차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일본정부가 일본은행의 발권력을 전비조달에 최대한 활용할 목적으로 1942년 개정한 「일본은행법」을 모방하여 중앙은행법 초안을 작성한 것이다.
즉 정부 법안에는 중앙은행 직원 신분을 공무원으로 하고, 역원(임원)의 임면권을 재무부장관에게 부여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무담보 대출 및 국채 인수를
중앙은행 업무에 포함시키고, 은행권의 발권한도 결정권한을 재무부장관에게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은행안 | 재무부안 |
---|---|
중앙은행의 독립성 | 중앙은행의 정부 종속 |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을 통한 신뢰 확보 | 정부주도의 경제부흥계획 달성을 위한 중앙은행 발권력의 활용 |
정부와 민간 공동 출자 형태의 소유구조, 정책결정기구인 통화심의회 설치 |
중앙은행 직원 신분을 공무원으로 설정, 임원 임면권, 발권한도 결정권한을 재무부장관에 부여, 정부에 대한 무담보 대출 및 국채 인수 업무 명시 |
서구식 중앙은행 제도 | 일본은행법 모방 |